태블릿에 다운 받아온 키릴 문자 어플로 키릴 문자를 외우다가 잠이 들었다.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여행만 오면 새벽에 눈을 뜨게 된다.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고 9시쯤 일어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차 안의 풍경을 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모두 잠들어 있을 때 사진이랑 영상도 찍고 구도에 대해서 고민했다. 하루하루 기차 안 풍경을 영상으로 편집할 계획이었다. 문 바로 앞에서 찍을 때 제일 마음에 들었다.
경이도 일어났을 때 같이 티타임을 즐겼다. 얼굴을 씻고 한국에서 왕창 가져온 팩 하나를 꺼내 붙이고 키릴 문자 공부를 시작했다. 정차역에서 데이터가 터지길래 gps도 한 번 켜보았다. 조금씩 바이칼 호수에 가까워지는 중.




오늘도 어김없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 저 누룽지는 경이가 가져온 건데 은근 꿀템이었다. 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적당히 스며들어 맛있었다.

초록 풀과 웅덩이만 보이다가 작은 마을 작은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정차하는 역이었다. 정차역에 매점이 있길래 구경 가서 스프라이트 한 병 사들고 들어왔다. 거기서 만난 귀여운 강아지.







나중에 보니 기차에 탑승하시는 승객이었다. 너도 여행하니?
기분이 좋은지 꼬리가 붕붕 댔다. 귀여워라. 답답하진 않을까. 정차역에서는 주인과 함께 내려서 짧게 산책했나 보다.



정차역 구경하다가 돌아오니 윗집 아저씨께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우리 3명은 반대편에 앉아 뻘쭘하게 있었다. 아저씨께서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린 알아들을 리 만무하고 각자 일방적인 이야기만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할까 하다 아까 어플로 공부한 키릴 문자 발음이 궁금해서 아저씨께 물어보았다. у о의 차이 ш щ의 차이는 현지인의 발음을 들어도 잘 와닿지 않았다.
아저씨는 도시락 라면에 마요네즈를 뿌려드셨다. 이것이 러시아 레시피인가?

기차에 타면 충전 자리가 모자를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 좌석 앞에 코드 꽂는 곳이 있어서 나름 편하게 충전했다. 충전기를 3개나 들고 가서 돌려가면서 충전하고 사용했다.

기차 타고 머리를 감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다. 경이가 드라이 샴푸를 빌려줘서 써봤는데 뭔가 건조해지는 느낌만 들고 개운하지 않아서 그냥 묶고 버티고 있다. 얼굴 씻고 양치하는 건 이제 능숙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고. 계획대로 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게으름을 부려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는 기차였다.

30분 정도 길게 정차는 역에 도착했다. 작은 가게들이 여러 곳 있어서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고 젤리를 샀다. 경이랑 같이 내려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늘 저녁은 경이와 정이에게 편지를 써주기로 했다. 기차 안에서 딱히 할 것도 없고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서 오글거리지만 엽서 꽉 채워서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에게도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경이와 정이는 파리에서 헤어지는 날 엽서를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러시아의 여름은 한국보다 아주 조금 덜 더운 정도였지만 비가 오면 날씨가 급변해서 점퍼를 걸치지 않으면 정말 추워진다. 바람막이, 얇은 긴 팔 정도는 꼭 챙겨 와야 할 듯하다. 대체로 기차 안은 에어컨이 작동될 때는 약간 쌀쌀하고 정차할 때는 더운정도였다. 첫 번째 기차를 탔을 때는 흐린 순간이 더 많아서 엄청 덥다고는 못 느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늑하고 편했다. 불편한 점들만 떠올랐던 기차 여행이 경험해보니 또 이렇게나 다르다. 지루하지만 잔잔한 일상 속을 벗어난 여행이 낯설고 매 순간이 예측되지 않아 불안하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여행 중에는 너무 힘들고 집에 가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지나고 나니 힘든 순간 모두 미화되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어김없이 또 밤이 되었다. 책상에 놓인 물건들이 점점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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