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낯선 도시 카잔

Check Fabric 2020. 7. 15. 22:11

일어나보니 두 시간이 줄어있었다. 지금은 9시 20분 한국은 오후 3시 20분 지금까지 총 6번의 시간이 바뀌었다.

꽤 높은 곳을 지나고 있는 기차

이번 기차에서는 위에 계신 러시아 분과 많은 대화는 나누어 보지 않았다. 대부분 책을 읽으시거나 폰을 보고 계셨다. 모스크바가 종착지라고 하셨다. 우리보다 먼저 탑승하시고 나중에 내리셔서 먹을 거리가 아주 많으셨다.
다샤와 나스탸는 내 이름과 친구들을 이름을 배워가더니 이제는 이름으로 우리를 불러주었다. 처음엔 발음이 쉬운 단어로 우리를 불러줬는데 이름을 불러주니 괜히 짠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ㅠㅠ.

어김없이 컵라면과 함께 하는 식사
이를모를 역
이름 모를 성당

이번 정차역에서는 딸기를 파는 상인을 보았다. 이렇게 바구니 상인들을 보는 것도 기차 여행의 작은 재미다. 친구들이랑 아이스크림과 탄산수를 사 먹고 올라탔다.

크기가 작은 딸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한 컵
마지막 날이라 꼬마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3일 동안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나고나니 다 추억이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고맙게도 우리를 그려주고 떠났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차 타기 전에 궁금했던 기차 윗 공간. 밑에도 캐리어를 넣을 수 있지만 혹시나 자리가 없으면 위에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짐이 무거우면 정말 올리기 힘들다.
햇볕 좋은 날
이 맛도 그다지 맛있진 않았던 것 같다.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간. 카잔 역에 드디어 도착했다. 여기선 드디어 캐리어를 끌 수 있는 경사길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날씨가 참 맑고 더웠다! 택시를 잡고 숙소로 가는 길. 이번 택시도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선글라스 운전자 님이 핸들을 잡으셨다. 깨진 사이드미러 유리 조각들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듯 보였다.

우리가 내린 곳은 카잔2역. 모스크바 갈 때는 이곳이 아닌 다른 역에서 탑승했다.
티코 감성

그 전 관광했던 도시들 보다 꽤 크다고 느껴졌다. 도로도 넓고 큼직하고 쭉쭉 뻗어있는게 대로가 잘 정비된 느낌이었다. 러시아 월드컵 호스트 도시라 그런건지 원래 이런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큰 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자 마자 보이는 크렘린 너머의 쿨 샤리프 모스크. 할 말을 잃는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되었다. 마침 맑은 하늘의 몽글몽글한 구름과 합쳐져 꿈의 한 장면 같이 느껴졌다. 정말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게 맞나? 한 순간에 이 도시가 엄청난 도시임을 깨달았다. 파란 지붕을 가진 모스크 그리고 달 조각은 카잔이라는 도시를 내 머리에 강렬하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얼른 짐을 풀고 관광하고 싶어졌다.

카잔에서는 딱 하루만 머무는거라 1분 1초가 아까웠다. 이번에도 3층이나 되는 건물을 엘리베이터 없이 캐리어를 낑낑대며 올라가 방을 찾아갔다.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호텔 다운 호텔을 여행 처음으로 느꼈다. 위에는 하늘을 볼 수 있는 창이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3일만에 기차에서 내렸던 날이니 샤워를 빠르게 하고 나왔다. 노을이 지기전 크렘린을 구경하러 나가야했기 때문이다.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트여 있는 창이 있던 방.
아늑하고 좋았다.

1층에는 식당도 운영하는 호텔이어서 이곳에서 전통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카잔은 러시아인과 더불어 이슬람 종교를 가진 타타르 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서 도심에서는 히잡을 쓴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식당도 타타르식 음식을 팔고 있었다. 타타르 음식 중 제일 먹을 수 있을 법한 메뉴와 유럽 샐러드를 주문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이미 다른 손님들은 식당 앞쪽에 있는 티비로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축구 결승 경기를 보고 있었다. 이번 결승전은 모스크바에 위치한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내가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곳에서 축구 경기 결승전을 보게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 카잔은 또 우리나라와 독일이 경기를 치른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 떠나기 일주일 전쯤 무려 축구 강국 독일을 이긴 도시에 와있다니 여러모로 상징적인 도시였다. 카잔은 이틀에 한 번 가는 기차가 있다고 해서 일정이 맞지 않는다면 취소할 각오도 했었는데 정말 안 왔으면 큰일날뻔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도시를 놓칠 뻔했다니! 여행이 끝난지 꽤 오래되었지만 또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주문한 음식은 굉~장히 늦게 나왔다. 게다가 주문을 잘못 받아서 쉬림프 샐러드가 아닌 닭가슴살 샐러드가 나왔고, 처음에 맥주를 시킨 건 아예 주문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가 한 골을 더 넣을 때 까지 나머지 음식은 나오지도 않았다. 음식이 너무 나오지 않아 잠시 식당 앞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슥 스쳐지나가면서 봐도 너무 아름다웠다. 근처에는 성당과 알록달록한 집이 있었다. 주변 풍경이 모두 로맨틱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고 음식이 나오기 전 테이블로 돌아왔다. 메인 요리인 고기를 빠르게 헤치우고 점점 지는 노을과 모스크를 놓칠 수 없어 걷기를 멈추고 버스를 탔다. 카잔에서는 앞에서 타든 뒤에서 타든 상관이 없으며 직원이 요금을 받으러 왔다. 만약에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구분할까 괜히 궁금해졌다.

숙소 옆에 있던 그림 같던 집

드디어 도착한 크렘린!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공주가 사는 성 같았다. 마침 보라색과 주황색의 오묘한 하늘빛을 보여주는데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옛날 공주가 살던 성곽을 걷고 있는 듯한 오후의 노을과 모스크였다. 앞에 큰 강과 여유롭게 풀밭에서 노을을 즐기는 사람들. 낭만,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도시 카잔이었다.

월드컵의 흔적들. 크렘린 근처에서 마지막 경기를 볼 수 있는 행사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노을이 다 질 때까지 원없이 모스크를 구경하고 크렘린을 따라 멋진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무모양의 거대한 조각이 있는 이 곳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했는데 무려 관공서라고 한다. 적어도 박물관이나 역사가 있는 곳인줄 알았는데 관공서라고 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출근해서 일하는 느낌은 어떨까? 창문은 노을까지 담을 수 있어서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카잔을 관광하면서 딱 일주일만 여기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그 매력이 더 해졌다. 좀 더 알고싶고 관광해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커피 전문점을 발견하고 커피를 사 먹으러 가다가 한눈판 사이 발목이 꺾이면서 무릎을 다쳤다. 심하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여행하는 도중에는 항상 조심하자를 마음에 새기며 남은 여행은 앞을 잘 보고 다녔다.^-^ 이번에도 따뜻한 커피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그리운 밤…


성벽을 따라 올라가 크렘린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저녁도 노을 풍경과는 다른 느낌으로 운치가 있었다. 크렘린 안에도 다양한 건축물들과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대한 철문에 박힌 해와 달은 디즈니 만화 영화 속 성의 입구 같았다. 높은 성 안에서 보는 카잔의 강가 야경은 그야말로 예술작품. 강 건너편 관람차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불빛이 바뀌고 있었다.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두워지니 이상한 사람들도 자주 마주쳤다. 니하오라며 쓸데없는 말로 말을 거는 외국인들 또는 우리를 보며 비웃은 외국인들. 관란객들이 아직 많이 지나다니는 시간이었지만 낯선 땅에서 어두워진 시간까지 다니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갔다. 숙소 앞에 있는 강도 산책로가 잘 되어있어서 천천히 산책을 했다. 카잔에서의 행복한 첫날이다.